1. 책소개
“보부아르는 죽을 때까지
이 소설을 버리지 않았다”
사랑과 우정 사이를 자유롭게 출렁이는 감정의 모험을 다룬 자전 소설
시몬 드 보부아르의 미발표 유작 『둘도 없는 사이』가 백수린 소설가의 번역으로 출간되었다.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페미니즘의 고전적 명제로 기억되는 작가 시몬 드 보부아르는 한국에서도 대표작 『제2의 성』, 프랑스 최고 문학상인 공쿠르상 수상작 『레 망다랭』 등으로 잘 알려져 있다. 『둘도 없는 사이』는 보부아르의 생전에 출간되지 못했다가 그녀의 입양 딸인 실비 르 봉 드 보부아르에 의해 2020년에야 비로소 세상에 공개되어 화제를 모았던 작품이다. 보부아르 사후 40년 가까이 흐른 지금, 소설가 백수린의 국내 첫 완역으로 마침내 한국 독자들을 만나게 되었다. 보부아르에게 사랑과 동경의 대상이었던 친구 ‘자자’의 이야기를 다룬 자전 소설이기에 실존 인물들의 모습을 담은 희귀 화보와 친필 편지가 부록으로 수록된 원서의 구성을 최대한 살려 편집했다.
출처:본문중에서
2. 저자
저자 : 시몬 드 보부아르 (Simone de beauvoir)
1908년 1월 9일 파리의 부르주아 가정에서 장녀로 태어났다. 가톨릭 명문으로 꼽히는 데지르 학원에서 엄격한 교육을 받고 자랐으며 1926년 소르본 대학에 입학해 철학과 문학을 공부했다. 이곳에서 만난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와 계약 결혼 관계를 맺고, 서로를 구속하지 않는 연인이자 지적 동반자로 반세기 가까운 세월을 함께했다. 1931년 마르세유에서 교직 생활을 시작해 루앙, 파리 등을 거쳐 1943년까지 학생들을 가르쳤다. 1943년 발표한 소설 『초대받은 여자』가 호평을 받자 본격적인 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1949년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주장을 담은 논쟁적인 에세이 『제2의 성』을 발표해 전 세계 페미니즘 운동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1954년 『레 망다랭』으로 프랑스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전후 사르트르와 함께 창간한 《현대》지의 주요 멤버로 활약하는 한편 1970년대 여성해방운동에 앞장서는 등 행동하는 지성인의 면모를 적극 보여주었다. 그 외 주요 저서로 『정숙한 처녀의 회고록』(1958), 『아주 편안한 죽음』(1964), 『위기의 여자』(1967), 『노년』(1970), 『작별의 의식』(1981) 등이 있다. 1986년 4월 14일 폐렴으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실존주의 철학자, 사회운동가, 작가로 살았으며 사르트르의 묘 옆에 안치되었다.
출처:본문중에서
3. 목차
둘도 없는 사이
1장
2장
실비 르 봉 드 보부아르의 말
옮긴이의 말
부록
출처:본문중에서
4. 책속으로
내가 아는 모든 아이들은 나를 지겹게 했다. 그렇지만 교실 사이에 있는 운동장을 거닐 때 앙드레는 나를 웃게 만들었다. 한번은 내가 평소 행동이 모범적이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교실 밖으로 쫓겨났을 정도로 웃음이 터진 적도 있었다.
■ p.18
그해 여름 나는 산책을 아주 많이 했다. 수풀에 손가락을 베어 가며 밤나무 숲 속을 걸었고, 움푹 파인 길을 따라 거닐면서 인동덩굴과 참빗살나무 다발을 꺾거나 오디와 소귀나무 열매, 산수유 열매, 매자나무의 새콤한 열매를 맛보았다. 꽃이 핀 메밀의 넘실거리는 향을 들이마셨고, 히드의 친숙한 향기를 느끼기 위해 땅바닥에 누워 있었다. 그러고 나서는 너른 초원의 은빛 포플러나무 아래 앉아 페니모어 쿠퍼의 소설을 펼치곤 했다. 바람이 불면 포플러나무가 웅성거렸다. 바람이 나를 흥분시켰다. 지상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나무들이 서로에게, 신에게 말을 거는 게 느껴졌다. 그건 하늘로 오르기 전 내 가슴을 파고드는 음악이고 기도였다.
내게 기쁨을 주는 것은 셀 수 없이 많았지만, 말로 하기는 어려웠다. 나는 앙드레에게 짤막한 엽서들만 보냈고, 앙드레도 내게 편지를 거의 하지 않았다. 앙드레는 랑드 지방의 외할머니 댁에 머물며 말을 타면서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녀는 10월 중순에나 파리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나는 앙드레를 자주 생각하지 않았다. 방학 동안에는 파리에서의 내 삶에 대해서 생각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포플러나무에게 작별을 고할 때는 눈물이 조금 났다. 나는 나이를 먹었고, 감상적으로 변해 있었다. 하지만 기차를 타자 내가 새 학기를 얼마나 좋아했는지가 떠올랐다. 아빠는 청회색 유니폼을 입은 채 기차역 플랫폼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고, 우리에게 전쟁이 곧 끝날 것이라고 말했다. 교과서는 다른 해보다 훨씬 더 새것처럼 보였다. 크기가 더 컸고 모양도 더 근사했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손끝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냈고 좋은 냄새가 났다. 뤽상부르 공원의 풀과 낙엽을 태운 향은 감동적이었다. 선생님들은 나를 꼭 껴안아 주었고 방학 숙제를 잘해 왔다고 칭찬을 퍼부어 주었다. 그런데도 나는 왜 불행한 기분을 느꼈을까?
■ p.25
“어린애들은 자기가 이해하지도 못하는 것에 대해서 말하는 게 아니야.”
앙드레는 대답하지 않고 다시 웃었다. 나는 난처해하며 앙드레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걸까? 내가 이해하는 사랑은 하나밖에 없었다. 앙드레를 향해 내가 품고 있던 사랑.
■ p.46
“나 좀 밀어 줘.”
앙드레를 밀었다. 속도가 붙자, 앙드레는 일어나서 거침없이 다리를 굴렀고, 곧 그네가 나무 꼭대기를 향해 날아올랐다.
“그렇게 높게는 타지 마!” 내가 소리를 질렀다.
앙드레는 대답하지 않았다. 날아오르고 떨어졌다가 더 높이 날아올랐다. 개집 옆에서 장작 창고에 떨어진 톱밥을 가지고 놀던 쌍둥이들이 관심을 보이며 고개를 들었다. 멀리서 테니스 채가 공을 때리는 희미한 소리가 들려왔다. 앙드레는 단풍나무의 잎을 스쳤고, 나는 겁이 나기 시작했다. 쇠로 된 고리가 신음하는 소리가 들렸다.
“앙드레!”
온 집이 고요했다. 채광 환기창을 타고 부엌에서 희미하게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벽을 수놓은 참제비고깔과 루나리아가 아주 살짝 흔들렸다. 나는 두려웠다. 그네의 널빤지를 붙잡거나 큰 소리로 애원할 엄두가 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네가 뒤집어지거나, 아니면 앙드레가 어지러워서 밧줄을 놓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 이편에서 저편으로 미쳐 버린 시계추처럼 흔들리는 앙드레를 보는 것만으로 구토증이 일었다. 앙드레는 왜 이렇게 오랫동안 그네를 탈까? 흰 원피스 차림으로 똑바로 선 채 내 곁을 지나갈 때 앙드레는 앞을 뚫어지게 보며 입술을 꽉 다물고 있었다. 어쩌면 머릿속 어딘가가 잘못돼 더 이상 멈추지 못하는 걸지도 몰랐다. 저녁 식사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미르자가 짖기 시작했다. 앙드레는 계속 나무 쪽으로 날아올랐다. ‘앙드레는 죽으려는 거야.’ 나는 생각했다.
■ p.67
앙드레는 집에 들어갔고, 나는 책을 들고 잔디 한가운데에 자리를 잡았다. 조금 후, 나는 앙드레가 사트네 자매들과 함께 장미를 꺾고 있는 걸 보았다. 그런 후 앙드레는 장작 창고에 장작을 패러 갔고, 둔탁한 도끼질 소리가 들려왔다. 해는 하늘 높이 솟았고, 책을 읽는 게 조금도 즐겁지 않았다. 갈라르 부인이 호의적으로 결정할 거라는 확신이 내게는 더 이상 없었다. 지참금이 많지 않은 건 말루 언니와 마찬가지였지만 앙드레는 언니보다 훨씬 더 예뻤고 훨씬 더 똑똑했으니 그녀의 어머니는 앙드레에 대해 아마도 더 큰 야망을 키워 나가고 있었을 것이다. 갑자기 커다란 비명이 들렸다. 앙드레였다. 나는 장작 창고 쪽으로 달려갔다. 갈라르 부인이 앙드레 쪽으로 몸을 숙이고 있었고, 앙드레는 톱밥 위에서 눈을 감은 채 발에 피를 흘리며 신음하고 있었으며, 도끼의 날이 피로 물들어 있었다.
■ p.141
‘앙드레가 임신을 하면 꼭 저렇겠지.’ 나는 생각했다. 처음으로 결혼을 하고 한 가정의 어머니가 되는 앙드레의 모습을 근심 없이 상상할 수 있었다. 앙드레는 이 집처럼 윤이 나는 아름다운 가
구들에 둘러싸여 있겠지. 앙드레의 집에서 사람들은 편안함을 느낄 거였다. 하지만 앙드레는 주석 그릇을 윤내거나 잼병을 양피지로 싸느라 몇 시간씩 보내지는 않을 거였다. 바이올린을 켤 테고, 나는 앙드레가 책을 쓸 것이라고 남몰래 확신하고 있었다. 앙드레는 언제나 책을, 글 쓰는 것을 무척 좋아했으니까.
‘행복은 앙드레에게 얼마나 잘 어울릴까!’ 앙드레가 곧 태어날 아기와 치아가 나고 있는 아기에 대해 젊은 여자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나는 생각했다.
“근사한 날이었어!” 한 시간 후 자동차가 백일초가 핀 화단 앞에 멈춰 섰을 때 내가 말했다.
“정말 그래.” 앙드레가 말했다.
나는 앙드레 역시, 미래에 대해서 생각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 p.151
앙드레는 선조들의 유해가 있는 베타리의 아주 작은 묘지에 묻혔다. 갈라르 부인은 흐느껴 울었다. “우리는 하느님 손안에 있는 도구들이었을 뿐이야.” 갈라르 씨가 부인에게 말했다. 무덤은 새하얀 꽃으로 뒤덮였다. 나는 어렴풋이, 앙드레가 죽은 건 이 순백색에 의해 질식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이해했다. 기차를 타러 가기 전, 나는 얼룩 하나 없이 순결한 꽃 더미 위에 새빨간 장미 세 송이를 올려놓았다.
■ p.182
출처:본문중에서
5. 출판사서평
★작가 김하나, 박연준, 마거릿 애트우드, 데버라 리비 추천★
★실존 인물들이 주고받은 친필 편지와 희귀 화보 수록★
백수린 소설가의 문장으로 부활한
시몬 드 보부아르의 미발표 유작 국내 첫 완역 출간!
보부아르가 오랜 세월 쓰고 싶어 했던 영혼의 단짝 ‘자자’ 이야기
“오늘 밤, 내 눈에 눈물이 고이는 것은, 네가 죽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살아 있기 때문일까? 이 이야기를 너에게 바치고 싶지만 나는 네가 더 이상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 나는 여기서 네게 문학적 기교를 통해 말을 걸고 있는 거지. 게다가 이것은 너의 실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에게서 영감을 받아 쓴 이야기일 뿐이야.” (본문 중에서)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실존주의 철학자, 사회운동가, 작가로 누구보다 치열한 삶을 살았던 시몬 드 보부아르. 그녀가 소르본 대학 재학 시절 만난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와 계약 결혼 관계를 맺고, 서로를 구속하지 않는 연인이자 지적 동반자로 평생을 함께한 일화는 이미 유명하다. 그런데 사르트르를 만나기 전, 보부아르의 둘도 없는 한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이름은 엘리자베스 라쿠앵. 보부아르보다 며칠 먼저 태어난 그녀는 일명 ‘자자’라고 불렸다. 『둘도 없는 사이』를 세상에 펴낸 보부아르의 입양 딸 실비 르 봉 드 보부아르가 원서의 서문에서 이들의 관계를 “열 살짜리 작은 여자아이가 처음 경험하는 사랑의 모험”이라고 소개했듯, 꾸밈없고 익살스럽고 재기발랄한 성격과 다양한 재능을 지닌 자자는 단숨에 어린 보부아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소설 속 ‘앙드레’라는 인물로 그려진 자자는 엄격한 가톨릭 명문으로 꼽히는 데지르 학교에서 처음 만나 1929년 스물한 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갑작스럽게 사망할 때까지 보부아르의 단짝 친구였다.
가톨릭 부르주아 계급의 완고한 전통을 따르던 가족 안에서 “자기 자신으로 있고자 했기 때문에 그리고 그러려는 게 나쁜 것이라고 설득당했기 때문에” 스러져 간 친구는 보부아르에게 평생의 화두였다. 미발표된 젊은 시절의 소설들과 단편집 『영성이 우위를 차지할 때』, 보부아르에게 공쿠르 문학상을 안겨 준 『레 망다랭』의 삭제된 페이지까지, 총 네 번에 걸쳐서 보부아르는 자자를 부활시키려 했지만 실패했다. 마지막으로 짧은 소설의 형태로 자자에 관한 이야기를 되풀이하는데 보부아르가 제목을 붙이지 않은 채 남겨 두었던, 그녀의 입양 딸에 의해 2020년에야 비로소 세상에 공개된 자전 소설 『둘도 없는 사이』가 바로 그 원고다.
보부아르가 소설이라는 장르를 통해 부활시킨 자자의 말과 제스처, 당대 여성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들의 기록은 실로 자유롭고 우아한 작가의 사유로 빛을 발한다. 이 소설의 중심에 놓인 것은 앙드레(자자의 작중 이름)와 실비(보부아르의 작중 이름) 사이의 사랑에 가까운 우정, 혹은 우정에 가까운 사랑의 마음이다. 두 사람은 아홉 살에 학교에서 처음 만난 순간부터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로 한 몸처럼 붙어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되고, 완전히 다른 결말을 맞이한다. 만족스럽지 않은 원고는 없애기도 했던 보부아르가 이 소설만큼은 죽을 때까지 버리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옮긴이 백수린은 보부아르가 자신의 친구인 자자의 죽음을 반복적으로 문학적 글쓰기 형태로 써 온 사실에 주목하며 이렇게 전한다.
“『둘도 없는 사이』 속 앙드레라는 인물로 그려진 자자는 데지르 학교에서 처음 만나 1929년 스물한 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갑작스럽게 사망할 때까지 보부아르의 단짝 친구였다. 친한 친구의 느닷없는 죽음이란 누구에게나 고통스러운 것이고, 작가로서 그런 일에 대해서 쓰고 싶어지는 것은 당연한 욕망같이 느껴진다. 하지만 보부아르가 자자의 죽음에 대해 계속 쓰려고 시도했던 것은 단순히 친구를 그리워하는 마음 때문만은 아니다. (…) 보부아르는 사르트르의 말에 동의한 것처럼 썼지만 죽을 때까지 이 소설을 버리지 않았다. 만족스럽지 않은 원고는 없애기도 했던 보부아르가 이 소설의 원고를 계속 간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이 소설이 궁금해졌다. 작가에게는 무엇을 쓰더라도 결국엔 되돌아갈 수밖에 없는 이야기가 있게 마련이고, 어떤 이야기는 다른 사람이 아무리 형편없다 하더라도 끝내 버릴 수 없는 법이니까. 그리고 그 덕분에 우리는 오늘날 우리에게 매우 필요하고, 흥미로운 새로운 소설과 이렇게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출처: 「 둘도 없는 사이 」 출판사 알에이치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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