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책소개
조선시대 500년 동안
일본에 파견된 이들은 누구며, 왜 갔을까,
그리고 무엇을 남겼을까
조선통신사는 왜구가 한반도를 약탈하는 상황에서 일본에 갔고, 임진왜란으로 전 국토가 유린된 상황에서도 ‘불구대천의 원수 나라’인 일본에 갔다. 그들은 400명이 넘는 대인원이었고, 평균 9개월간 한양에서 부산까지는 육로로, 부산에서 쓰시마를 거쳐 오사카까지는 바닷길로, 그리고 다시 육로로 에도를 왕복했다. 거리를 환산하면 1만 2천 리, 약 4,600km의 대장정이었다. 이런 노력 끝에 약탈을 공존으로, 전쟁을 평화로 바꾸어 갔고, 그들이 남긴 기록물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 되었다.
출처:교보문고
2. 저자
성균관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조선시대 한일관계사를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본 홋카이도대학, 도쿄대학, 규슈대학에서 연구했다. 강원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했고 현재는 강원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한일관계사학회를 창립했고, 국사편찬위원회 위원,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 총간사 등을 역임했다. 한국이사부학회 회장과 한일문화교류기금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20년 넘게 대학생·교사·시민들과 함께 조선통신사의 옛길을 답사하고 있다.
주요 논저로는 『이사부 독도를 걷다』 (2020, 역사인), 『조선통신사의 길 위에서』 (2018, 역사인), 「 『해동제국기』 를 통해 본 15세기 조선지식인의 동아시아관」 ( 『사림』41, 2012), 「조선시대 통신사연구의 회고와 전망」 ( 『한일관계사연구』 16, 2002) 외 다수가 있다.
출처:교보문고
3. 목차
제1장 왜, 일본에 갔나
1. 약탈자 왜구 12
2. 통교를 시작하다 21
3. 공존의 장, ‘재팬타운’ 삼포 44
4. 임진왜란과 불구대천의 원수, 일본 70
5. 돌아온 평화의 시대 93
제2장 누가, 어디를 갔나
1. 통신사의 구성과 임무 130
2. 통신사의 길 144
제3장 그들은, 무엇을 남겼나
1.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208
2. 외교 기록 211
3. 여정 기록 215
4. 문화 교류 기록 227
조선통신사 관련 자료 251
참고문헌 265
찾아보기 268
출처:본문중에서
4.출판사서평
● 관계는 늘 함께 하는 것
관계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쌍방이 늘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다. 어느 한 쪽의 노력이나 인내만으로는 결코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 친구 사이도 그렇고 부부나 부모자식 사이도 그렇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국제관계라고 다를 리가 없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와 가장 가까운 나라인 일본과의 관계는 어떨까? 하루에 2만 명 이상의 양국 국민들이 왕래하며 민간교류가 활발하지만, 정치나 역사 면에서는 감정적 대결이 일상화되었다. 역사교과서 왜곡, 독도, 위안부 문제에 이어 북핵 문제가 모두 양국의 첨예한 관심사이자 인식이 완전히 갈리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우리로서는 당연히 양보할 수 없는 문제들이고, 일본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결국 두 나라는 친구가 아닌 원수가 될 수밖에 없고, 마침내는 전쟁도 불사해야 할까?
모든 문제의 원인을 일본 탓으로 돌린다고 하더라도 이런 결론에 동의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한국과 일본은 이미 전쟁을 치러본 경험이 있고, 그 결과가 어떤 것이었는지도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어떤 경우든 전쟁과 대결이 아니라 평화와 공존을 선택해야 한다. 한일관계를 둘러싼 이런 근본적인 고민은 오늘날의 정치인이나 학자들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500년 전의 우리 조상들과 일본인 조상들도 똑같은 문제를 고민했다. 그리고 그런 고민과 숙고의 결과로, 혹은 문제해결을 위한 하나의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 바로 ‘조선통신사’다
● 조선통신사는 믿음과 소통의 상징
500년 전 조선과 일본의 정치 지도자들, 그리고 지식인 집단이 생각하기에 두 나라 사이에서 벌어지는 모든 문제의 근원은 ‘믿음과 소통의 부족’이었다. 조선은 임진왜란과 같은 전쟁을 일으키는 일본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일본도 중국과 한통속이 되어 일본을 고립시키고 왕따시키는 조선을 자기네 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양국 간에 신뢰가 부족해지면 일본은 어김없이 조선을 침략했고, 그 참화는 조선과 일본 모두에게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이처럼 한일 양국의 지도자와 국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서로에 대한 믿음 곧 신뢰라는 사실이 드러나자, 두 나라는 신뢰 회복을 기치로 내걸로 서로 소통을 시작했다. 왕래와 소통의 최정점이자 국가 차원의 공식적인 행사가 조선통신사의 일본 방문이었다. 만남과 교류의 가장 큰 목표는 역시 신뢰 회복이었다. 그래서 사절단의 명칭도 ‘믿음을 통한다’는 의미의 통신사였다. 조선통신사에 의한 에도에서의 국서전명식은 조선국왕과 막부쇼군이 대면할 수 없던 시대에 직접 소통하는 방식이었다. 요즈음의 정상 외교나 다름없는 시스템이었다. 조선통신사는 실제로 많은 성과를 남겼다. 왜구에 의한 일방적인 약탈을 교역과 공존 共存 의 관계로 전환시켰고, 임진왜란이라는 침략과 전쟁을 평화平和 와 공생共生의 관계로 만들어 갔다. 양국의 노력으로 통신이 활발할 때는 약탈이나 전쟁은 없었다. 반대로 통신이 끊어지면 대결과 전쟁이 다시 일어났다. 구한말 일제의 조선침략과 병탄도 한두가지 요인으로 설명할 수 없지만, 통신과 소통의 부족도 한 요인이 되었음은 명백한 사실이다.
● 외교는 실리와 명분
필자는 지난 30여 년간 대학에서 한일 양국의 관계사를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가르쳐왔다. 그 과정에서 깨달은 한 가지가 있다면, 관계가 나쁜 때일수록 더 많은 교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로 이견이 생기고 감정적 대립이 고조된다고 해서 관계를 단절하고 교류를 줄여서는 안 된다. 지난 2015년은 한일이 국교를 정상화한 지 꼭 50년이 되는 해였다. 그런데 양국은 정상회담 한 번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연말에 느닷없이 위안부 합의라는 것을 내놓았다. 충분한 협의(통신)를 거치지 못한 이 합의에 수많은 사람들이 분노했고, 이후 한일 양국의 관계는 진전이 아니라 퇴보를 거듭하고 있다. 관계가 나쁜 때일수록 더 많이 교류해야 한다고 믿는 필자에게 이것은 결코 바람직한 모습으로 보이지 않는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항해와 어떤 문제에 봉착할지 모르는 두려움 속에서도 기꺼이 수천 리 통신사의 길을 나섰던 옛 선조들처럼, 오늘의 우리도 신뢰의 회복과 더 많은 통신을 위해 발 벗고 나서야 한다. 일본에 대한 무시와 감정적 배척은 일시적인 만족감을 줄지 모르지만 결코 온당한 길은 아니다. 얻는 것보다 잃는 게 훨씬 많을 수 있고, 가장 가까운 이웃을 적으로 돌리는 어리석은 선택이 될 수도 있다. 한미일과 북중러가 난마처럼 얽힌 동아시아의 외교무대에서 일본과의 관계를 단절한다거나 대결 국면으로 만든다는 상상 자체가 어불성설이기도 하다. 좋든 싫든, 밉든 곱든, 일본은 이미 우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나라이다. 물론 공존을 위해선 역사의식의 공유가 전제되어야 하고 미래에 대한 공생의 비전을 가져야 한다. 뿐만 아니라 과거사의 오해나 왜곡에 대해 제대로 대응해야 함은 당연하다.
출처: 동북아역사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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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통신사:평화외교의 길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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