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책소개
“누구나 어느 순간 그의 묵언과 강렬하게 부딪힐 것이다.”
『김대중 자서전』과 『새벽: 김대중 평전』 쓴 김택근은 ‘문장의 고수’로도 불린다. 오랜 기자 활동으로 얻은 단단한 논리와 시적 정서는 수많은 독자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전해왔다. 중언부언 설명하지 않고 본질에 닿으나, 인간과 자연 앞에서 언제나 겸허한 저자의 글은 맑고 예리해 어지러운 마음을 정화한다.
김택근의 글은 시대를 뛰어넘는 통찰의 기록이기도 하다. 지난 글이 바로 지금의 현실을 관통한다. 수십 년간 그의 칼럼은 혐오로 얼룩진 정치를 꾸짖고, 국가적 참사에 희생된 이들을 호명했으며, 잃어버린 시절과 자연을 노래했다. 오늘날에도 유효할 뿐 아니라 몇 번이고 곱씹고 읽게 만든다. 그래서 소설가 정지아는 “김택근의 글은 잘 벼린 칼처럼 우리 마음에 새기게 한다”라며 찬사를 보냈으며, 시인 신대철은 “누구나 어느 순간 그의 묵언과 강렬하게 부딪힐 것”이라 단언했다.
《경향신문》에 연재한 동명의 칼럼 제목인 ‘묵언’의 뜻에 대해 저자는 “말로 지은 삿된 것, 헛된 것을 부수자는 의미”라며 “말이 극도로 오염된 시대에 묵언은 정화이자 성찰”이라고 말한다. 혐오의 말로 얼룩진 시대에서 벗어나 성찰의 눈을 갖고자 하는 이들에게 『김택근의 묵언』은 오래 두고 펼쳐볼 만한 책이다.
출처:본문중에서
2. 저자
저자 : 김택근
1983년 박두진 시인 추천으로 잡지 《현대문학》에 시를 발표하며 시인으로 등단했다. 응축된 문장과 감정선을 파고드는 문체가 특색이다. 동국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경향신문에서 종합편집장, 문화부장, 논설위원 등을 역임했다. 파격과 정곡을 찌르는 신문 편집자로, 예리하면서 따뜻한 시선을 담은 칼럼 필자로서 시대를 말해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직접 요청해 『김대중 자서전』을 썼고, 『성철 평전』 『용성 평전』도 집필했다. 도법 스님과 함께 걸은 국토순례 기록인 『사람의 길 - 생명평화 순례기』처럼 평화와 생태의 중요함을 강조한 글을 다수 썼다. 『몽실언니』로 유명한 은둔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을 처음 인터뷰했고, 그 인연으로 『강아지똥별 - 별이 된 사람 권정생』이라는 동화책을 내기도 했다. 그 밖에 동화책 『벌거벗은 수박도둑』, 에세이집 『뿔난 그리움』 등이 있다. 정읍시 신태인읍 출신이다.
출처:본문중에서
3. 목차
추천사 ㆍ005
프롤로그 - 물기 어린 시대를 건너며 ㆍ010
1부 - 네 죽음을 기억하라
사람 김민기 ㆍ026
어른 김장하가 있어 우리가 되었다 ㆍ030
논을 팔다 ㆍ034
‘워낭 소리’ 끊긴 곳에서 우리는 ㆍ038
퇴출 간이역 ㆍ042
큰 어린이, 권정생 ㆍ044
미나리와 애틀랜타 누님 ㆍ047
고향 그리고 느티나무 ㆍ051
‘효’가 무엇인지 묻지 않는다 ㆍ054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가리키는 곳 ㆍ058
역사박물관 앞 플라타너스 ㆍ062
돌며 흘러야 붙박이별이다 ㆍ066
박수근의 그림 ㆍ069
억울한 죽음의 어머니 ㆍ072
간도에는 지금도 죽은 자들이 살고 있다 ㆍ076
푸른 눈의 증언 ㆍ080
좋은 정치인은 갑자기 솟아날 수 없다 ㆍ083
네 죽음을 기억하라 ㆍ087
비평의 횡포 ㆍ091
정 ㆍ094
2부 - 이름도 병이 든다
먹방이 슬프다 ㆍ100
지금 누가 홀로 울고 있다 ㆍ104
그대 명당을 찾는가 ㆍ107
이름도 병이 든다 ㆍ111
신태인 100년 ㆍ115
김치를 위하여 ㆍ119
봄날 살처분 ㆍ123
무당과 함께 사라질 것인가 ㆍ125
부처님을 팔지 마라 ㆍ129
폭력과 정의로운 복수 ㆍ133
손의 자비 ㆍ137
무명씨, 내 땅의 말로는 부를 수 없는 그대 ㆍ140
봄비 ㆍ144
부처의 미소 ㆍ147
3부 - 말이 모든 것을 말한다
전라도 놈 김 과장 ㆍ152
지식의 편싸움 ㆍ156
남과 북은 다시 ‘괴뢰’가 될 것인가 ㆍ160
하늘엔 제비, 땅에는 제비꽃 ㆍ164
기후 악당들 ㆍ167
새만금 갯벌의 저주 ㆍ171
빛의 습격 ㆍ175
하루살이의 특별한 하루 ㆍ178
도시의 술꾼들 ㆍ182
걷는다는 것 ㆍ184
도둑맞은 가난 ㆍ186
더는 악업을 짓지 말라 ㆍ190
당신의 지식은 건강한가 ㆍ194
말이 모든 것을 말한다 ㆍ198
풀뿌리민주주의 뿌리가 썩고 있다 ㆍ202
민주화 역사의 기생충이 될 것인가 ㆍ206
백기완 선생께서 묻고 있다 ㆍ210
문명의 충돌 ㆍ214
가을과 겨울 사이 ㆍ216
4부 - 그러므로 나는 당신입니다
봄날은 간다 ㆍ220
하나의 달이 천 강에 ㆍ224
달동네에서 달을 본 적 있는가 ㆍ228
무덤을 박차고 나온 사람들 ㆍ232
중도주의, 정하룡의 마지막 당부 ㆍ236
당신들이 바다를 아는가 ㆍ240
서해 끝에 격렬비열도가 있다 ㆍ244
지구 멸망이 아니다 ㆍ248
석유동물 시대의 종말 ㆍ252
소나무야 소나무야 ㆍ256
박경리의 ‘생명’ ㆍ259
나무에는 영혼이 있다 ㆍ261
교회 문을 열어라 ㆍ265
평화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평화가 되자 ㆍ269
지휘자 김성진의 ‘경계 허물기’ ㆍ273
선승의 통곡 ‘시간의 사슬 끊기’ ㆍ277
그러므로 나는 당신입니다 ㆍ281
빈자일등 ㆍ285
검은 옷을 입은 백의민족 ㆍ287
5부 - 김대중의 마지막 눈물
김대중을 ‘3김’으로 묶지 말라 ㆍ292
김대중 그리고 임동원 ㆍ295
성공한 대통령이 있었다 ㆍ299
국민의정부 정권 재창출 ㆍ303
김대중의 마지막 눈물 ㆍ307
김대중 100년 ㆍ311
에필로그 - 김택근을 만나다
“취재가 깊어야 형용사를 자를 수 있어” ㆍ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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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책속으로
우리는 ‘조국 근대화’와 ‘정의사회 건설’ 같은 구호에 마냥 나부껴야 했다. 그것들은 국가 폭력의 다른 명칭이었다. 아픈 시절이었다. 세상에 순수한 폭력은 없다. 욕망의 그림자가 폭력화하지 않으려면 참회를 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참회하지 않았다. 모두가 공명共鳴하는, 과거를 씻기는 거대한 의식을 치르지 않았다. 공적인 반성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도 국가와 직장, 심지어 종교마저 폭력을 품고 있다.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미 군정, 독재 정권의 폭력이 남아 있다. 돈과 권력은 물론이고 학연, 지연이란 폭력이 도사리고 있다. 그 폭력의 실체를 발가벗기고 폭력 유발자들을 고발하고 싶었다.
-프롤로그 「물기 어린 시대를 건너며」/15쪽
그는 하늘에서만 빛나지 않을 것이다. 가난한 마을에 불이 켜지면 별들의 노랫소리를 담아 내려올 것이다. 모든 잘난 것들이 사라진 마을에는 또 다른 김민기가 살고 있을 것이다. 그곳에 내려 두리번거릴 것이다. 주막을 발견하면 어떤 속기俗氣도 묻어 있지 않은 미소를 지을 것이다.
우리 삶도 떠내려가고 있다. 노을 뒤편의 어둠이 보인다. 노래 한 곡 받쳐 들고 우리도 머지않아 어딘가에 내려야 한다. 무엇을 받들고 무엇을 버려야 김민기 마을에 들 수 있을까.
-1부 네 죽음을 기억하라 「사람 김민기」/29쪽
돌이켜 보면 지난 엄혹한 시절에 정치인 김영삼, 김대중은 이름만으로도 희망이었다. 민주화를 열망하는 국민에게 양김은 ‘새로운 내일’이었다. 한 시대를 함께 건너갈 좋은 정치인이 존재함은 축복이다. 부패하고 무능한 정치인이 나쁜 정치를 해도 그것들을 바로잡는 일은 역시 정치를 통해야만 가능하다. 그래서 정치를 무조건 증오해서는 안 된다. 정치가 더럽다고, 정치인이 썩었다고 정치판에서 눈을 떼면 더 나쁜 정치인들이 활개를 친다. 좋은 지도자를 원한다면 부드러운 후원자, 매서운 감시자가 돼야 한다.
-1부 네 죽음을 기억하라 「좋은 정치인은 갑자기 솟아날 수 없다」/85~86쪽
거의 모든 종교는 음식을 앞에 두고 기도를 드린다. 우선 하늘이 내린 축복, 땅의 자비, 농부의 정성에 두 손을 모은다. 양식에 스며있는 태양과 달과 별, 그리고 바람과 비에게도 고개를 숙인다. 마지막에는 음식이 되어준 생명들에게 경배했다. 동학 2대 교주 최시형은 '이천식천(以天食天)'을 설했다. 음식이 되어준 생명들도 하늘의 일부인 만큼 음식을 먹는 행위는 바로 하늘로써 하늘을 먹는 셈이다. 하늘인 내가 다른 하늘을 먹어 생명을 얻는다는 것이다.
-2부 이름도 병이 든다 「먹방이 슬프다」/101쪽
이제 공적인 복수가 시작됐다. 착한 주먹질은 없어도 정의로운 복수는 있다. 한 사람의 영혼을 짓밟고 인생을 망친 자가 승자로 남게 해서는 안 된다. 폭력중독자는 언제 발작을 할지 모른다. 폭력은 모두의 문제다. 폭력의 상처를 개인의 것으로 방치하면 언젠가는 폭력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피해자의 고통을 보고 모두가 아파할 때 비로소 폭력을 추방할 수 있다.
-2부 이름도 병이 든다 「폭력과 정의로운 복수」/136쪽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변한 게 없다. 용산역에서 아주 가까운 이태원에서 같은 참사가 일어났다. 어림 반세기가 지났지만 젊은이들이 압사했다. 어떤 시점에 발생한 일은 우주 속으로 흩어지지 않고 계속 남아 맴돈다고 한다. 업력이 중력을 뚫고 나갈 수 없음이다. 그래서 미래의 우리 모습을 보려면 오늘의 우리 행위를 보라고 했다. 세월이 흘러도 업보가 소멸되지 않고 언젠가 재앙으로 닥친다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하지만 업장을 녹일 단 하나의 행위가 있으니 바로 참회다. 모든 종교는 복과 운을 빌기 전에 참회부터 하라고 이른다.
-3부 말이 모든 것을 말한다 「더는 악업을 짓지 말라」/192쪽
말은 건네는 상대가 있다. 그래서 말은 돌아온다. 좋은 말은 웃는 얼굴로, 나쁜 말은 화난 얼굴로 돌아온다. 한번 뱉은 말은 평생 자신을 따라다닌다. 때로는 운명을 옭아매기도 한다. 말에는 파장이 있다. 맵고 독한 말은 격하게 번져나간다. 상대를 죽이겠다는 말에는 자신 또한 죽을 각오가 들어있음이다. 혀는 칼이고, 입은 화(禍)가 들락거리는 문이다.
-3부 말이 모든 것을 말한다 「말이 모든 것을 말한다」/198쪽
우리는 서서히 나이를 먹는 게 아니다. 갑자기 늙는다. 어느 날 문득 거울을 보면 중늙은이 하나가 나를 쳐다보고 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우리 젊은 날은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살아 있는 동안 몇 번의 봄을 맞을 것인가. 또 한 걸음 멀어진 내 청춘은 어디쯤에서 서성거리고 있을까. 눈물 젖은 과거는 눈물 없는 곳으로 흘려보내야 하리. 그러나 어쩌겠는가. 다시 가는 봄이 서러워 눈물이 나는 것을.
-4부 그러므로 나는 당신입니다 「봄날은 간다」/222~223쪽
1960년대 정부는 공업을 받들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도시의 불빛과 공장의 기계를 동경했다. 농어촌은 점차 버림을 받았다. 낙담한 사람들은 죽기 전에 수도꼭지 한번 빨아보자며 서울로 진격했다. 고향을 떠난다는 것은 얼마나 두려운가. 가슴에 비수 하나씩 품어야 했다. 힘을 주다 보니 눈에 핏발이 가시지 않았다. 산자락에 집을 짓고 내 집이라 우겼다. 그래도 당국은 모른 체했다. 정부는 도시 빈민층을 감당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 핏빛 설움과 분노를 건드릴 수 없었다. 또 산업화를 위해 언제든지 부르면 달려오는 값싼 노동력이 필요했다. 무허가 산동네를 적당히 방치했다.
-4부 그러므로 나는 당신입니다 「달동네에서 달을 본 적 있는가」/228~229쪽
흔히 해방 이후 모든 대통령은 실패했다고, 불행했다고 싸잡아 매도한다. 동의할 수 없다. 우리에게 성공한 대통령이 있었다. 국민의정부 5년은 역사 속에서 빛나고 있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도 각 진영에서 가장 많이 찾은 정치인은 김대중이었다. 하지만 나라 경영에 실패한 무리는 성공한 김대중 정부와 자신들을 견주기가 부담스러울 것이다. 그래서 김대중의 유산을 구체적으로 계산하지 않고 추상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 정치사도 이제 제대로 정리해야 한다. 대통령의 공과를 정치精緻하게 규명해야 한다. ‘정치’ 없이 어찌 민주주의가 발전했겠는가. 동강 난 나라지만 현대사를 들춰보면 역사에 길이 남을 불멸의 순간과 감동적 일화들이 들어 있다.
-5부 김대중의 마지막 눈물 「성공한 대통령이 있었다」/301쪽
출처:본문중에서
5. 출판사서평
“잘 벼린 칼처럼 우리 마음에 새기게 한다.” 대통령의 필사 김택근, 통찰의 문장들
뉴스를 틀면 연일 어지러운 세태에 현기증이 난다. 진영 논리로 무장한 권력자들의 선동과 날조 그리고 폭력이 난무한다. 어느덧 우리 주변을 둘러싼 뉴미디어는 소통의 자유를 가져다주는 듯했으나 오히려 가치 편향에 일조하고 있다. 어느 때보다 소란한 시대를 지나고 있는 우리에게 지금 가장 절실한 것은 더 이상 말이 아닌 반성과 성찰이다.
『김택근의 묵언』의 저자 김택근은 시인이다. 1984년 잡지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해 《경향신문》에서 30여 년간 편집기자로 일했다. 2004년부터 2010년까지 6년간 김대중 자서전을 집필하기도 했다. 기자로 활동하며 김택근이 얻은 별명은 ‘문장의 고수’, ‘늙지 않는 시인’이다. 객관과 논리로 치밀한 문장을 써내면서도 세상을 향한 따뜻한 시인의 시선을 놓지 않기 때문이다. 시대적 성찰과 시적 성찰을 바탕으로 한 김택근의 글은 그래서 단단하면서도 서정적이다
이 책은 저자가 《경향신문》, 《주간경향》, 《월간불광》 등에 연재한 칼럼을 다듬어 엮은 책이다. 수십 년간 그가 쓴 칼럼은 혐오로 얼룩진 정치를 꾸짖고, 국가적 참사에 희생된 이들을 호명했으며, 잃어버린 시절과 자연을 노래했다. 기자의 눈으로는 논리의 전장을 봤지만 시인의 마음으로는 시대의 아픔을 다뤘다. 중언부언 설명하지 않고 본질에 닿으나, 인간과 자연 앞에서 언제나 겸허한 저자의 글은 맑고 예리해 어지러운 마음을 정화한다. 김택근의 글을 만난 이들이 하나같이 산문의 교범으로 꼽는 이유다. 소설가 정지아는 『묵언』에 대해 “김택근의 글은 잘 벼린 칼처럼 우리 마음에 새기게 한다. 참을 수 없이 가벼워진 세상에서 그의 깊고 진한 사랑은 한사코 낮은 것을, 겨우겨우 사는 것을 향한다”라고 했으며, 전 청와대 연설비서관 강원국은 “오래전부터 김택근의 문장을 부럽게 훔쳐봤다. 읽고 또 읽었다. 베끼고 흉내 냈다”라고 고백했다.
삿되고 헛된 것을 부수는 진정한 ‘말의 힘’
난무하는 폭력에 전하는 ‘묵언’
《경향신문》에 연재한 동명의 칼럼 제목에서 가져온 ‘묵언’의 사전적 뜻은 ‘말을 하지 않음’이다. 글을 쓴다는 건 무언가를 말함인데, 말하지 않는다는 뜻의 묵언을 제목으로 삼은 것은 의아하다. 책 말미의 인터뷰에서 저자는 묵언의 의미에 대해 “말로 지은 삿된 것, 헛된 것을 부수자는 의미”라며 “말이 극도로 오염된 시대에 묵언은 정화이자 성찰”이라고 밝힌다. 책에서 ‘삿된 것’의 대표적인 키워드는 ‘폭력’이다. 저자는 우리 역사 속에 오랜 시간 내재한 광범한 폭력의 줄기와 시대적 현상을 짚어낸다. 폭력은 학창 시절 “손바닥으로 얼굴만 가격하는 교사”와 같이 언뜻 사소해 보이는 일상에서도 발견되며(2부 「폭력과 정의로운 복수」), 노동자들이 “맞아서, 떨어져서, 끼여서, 치여서” 죽는 수많은 하청업체에서도 발견된다(1부 「억울한 죽음의 어머니」). “교회에 불을 지르고 마을을 불태웠던” 제암리 학살과 같은 국가적 폭력도 있다(1부 「푸른 눈의 증언」).
더 나아가 저자의 시선은 지구를 함께 공유하는 동식물과 환경에 닿는다. 산과 들 그리고 수많은 생명체의 안식처를 허무는 생태계 훼손은 분명 인간의 폭력에 의한 것이다. 저자는 우리를 둘러싼 폭력의 혐의를 몇몇 정적에 두는 손쉬운 방법을 택하지 않고 우리 “모두의 문제”로 인식하고자 한다. 폭력의 역사와 문화 속에 살아가고 있는 모든 개인, 집단, 사회 그리고 인간에게는 함께 극복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폭력의 상처 역시 함께 나눠야 한다. “피해자의 고통을 보고 모두가 아파할 때 비로소 폭력을 추방할 수 있다.” 폭력의 원인과 대상을 정확히 지목하되 보듬는 책임을 방기하지 않는 것, “오염된 말과” “삿된 것”을 물리는 『묵언』이 향하는 지점이자, 우리 마음에 울림을 주는 연원이다.
달동네에서 달을 본 적 있는가
상실의 시대에 던지는 위로
『묵언』 총 5부로 구성됐다. 1부 「네 죽음을 기억하라」, 2부 「이름도 병이 든다」에서는 점점 사라져 가는 소중한 우리의 지난 가치들과 현실의 세태를 주로 다루며 3부 「말이 모든 것을 말한다」와 4부 「그러므로 나는 당신입니다」에서는 우리 정치에 깃든 삿됨을 말하고 평화와 생태에 주목한다. 5부 「김대중의 마지막 눈물」은 저자가 인연을 맺은 정치인 김대중과 관련된 글을 추려 실은 것이다.
저자 김택근은 정읍 신태인 출신으로 이촌향도와 도시화를 온몸으로 체험한 세대이다. 그래서 책 곳곳에는 점차 잊히고 사라지는 잃어버린 풍경과 덕목에 대한 그리움이 깊이 배어 있다. 미국에서 터를 잡기 위해 떠난 누이와 매형을 대신해 일곱 살이 될 때까지 손녀를 키운 어머니의 일화와(1부 「미나리와 애틀랜타 누님」), 그 시절 “지아비요, 자식”이자 “마지막 자존심”이었던 아버지의 논을 팔던 순간을 다룬 이야기(1부 「논을 팔다」)는 읽는 이를 속절없이 향수에 젖게 만든다. 저자가 젊은 날을 보낸 달동네 ‘백사마을’ 이야기 역시 쉬이 지나칠 수 없다. “널빤지로 가난을 가렸지만 이내 모두 드러났”던, “과거 자랑을 하면 현실이 더욱 초라해졌”던 달동네 공동체의 이야기(4부 「달동네에서 달을 본 적 있는가」)는 고향을 떠나 “수도꼭지 한번 빨아보자며 서울로 진격”한 그 시절 모든 이들의 이야기로 확장되며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개인사적 이야기만 불러내는 것은 아니다. 시대의 진정한 어른에 대한 이야기도 담았다. 가수 김민기, 김장하, 백기완, 권정생, 성철 스님 등 “세상을 편가르”기 하지 않고 “남을 위해 살”았던 이들을 추억하고 추모한다. 잃어버린 가치들과 잃어버린 사람들을 기억하고 되살리는 『묵언』은 그래서 지나온 시절의 만가(挽歌)가 된다. 그리고 그 노래는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토닥여 준다. 삿된 것들의 난무 속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 즉 무명씨에게 건네는 글에는 낫낫한 진심이 담겼다. 저자는 “우리는 자신에게 위로받을 수 없고 자신을 쓰다듬어 줄 수 없다”, “함께 있어서 내일이 있다”라고 말하며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보통의 사람들에게 사랑과 위로를 건넨다. 잃어버린 시절을 종종 떠올리는 이들이라면 그리고 오늘을 살아내기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다면 『묵언』이 조용히 내미는 손길을 맞잡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시 그를 부른다
김대중의 마지막 눈물
김택근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인연이 각별하다. 2004년부터 2012년까지 6년간 『김대중 자서전』을, 2년간 『새벽: 김대중 평전』을 썼다. 저자의 말대로라면 “8년간 ‘김대중 글 감옥’에 갇혀”있었다. 5부 「김대중의 마지막 눈물」에 실린 여섯 편의 글은 단순히 김대중을 회상하는 것이 아닌 시의에 의해 쓴 글들이다. 위태로운 민주주의 앞에 서서(「김대중의 마지막 눈물」), 6ㆍ15남북공동선언 20주년을 맞아 그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김대중 그리고 임동원」), 문재인 전 대통령의 정권 재창출의 요건을 살피기 위해(「국민의정부 정권 재창출」) 그를 불러냈다. 우리 정치와 사회가 또다시 그의 이름을 필요로 하진 않는지 김택근의 글을 통해 되새겨 봄 직하다.
출처: 「 김택근의 묵언 」 출판사 동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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