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책소개
러시아문학의 프리즘에 비춰본
현대 한국의 시대사
현대사를 점거한 이념과 실존의 광장에서
시대 지표이자 대리 발언대로 우리 곁을 지켜온
한국의 러시아문학 이야기
그 정신이 20세기 한국의 지식인ㆍ민중 모두를 움직였다는 데서 러시아문학은 각별하다. 세기 초에 계몽ㆍ방랑ㆍ빈궁ㆍ민중의식ㆍ저항정신의 모습으로 찾아와 세기 후반에 사회적 격변기를 통과하면서 연민과 공감 그리고 분노와 실천으로 파문의 반경을 넓혀간 문학. 개인을 넘어 시대가 읽고 집단이 감동했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꼭 7년 전 전작에서 ‘근대’ 한국의 러시아문학 수용사를 분석했던 저자는 이번에 시야를 좀 더 ‘현대’로 끌어당긴다. 이 책은 해방 후 분단기부터 1990년대 개방기에 이르기까지 반세기 동안 한반도에서 러시아ㆍ소비에트문학이 어떻게 읽히고 해석되고 소비되었는지 추적한 결과다. 해방, 분단, 냉전, 반체제운동, 민주화,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이어진 한국의 사회 흐름을 러시아문학이라는 프리즘으로 투시해 재연한다. 격변하던 한국 사회가 러시아문학을 읽어낸 방식, 러시아라는 큰 텍스트를 이해하고 받아들인 방식이 이 책의 중심 화두다. 북한 체제 형성기 소비에트 문화 이식과 한민족 디아스포라의 문제도 여기에 관여한다.
해방 정국이란 혼란한 시대 상황을 기점으로 잡은 이 책은 무엇보다 최인훈의 『광장』에서 빌려온 ‘광장과 밀실’이란 양분된 구도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하면서도 일체의 이분법 너머 하나로 만나는 광장이 있었듯 광장과 밀실은 통한다는 통찰에까지 다다른다. 어느 쪽에 속하건 러시아문학 본연의 자리는 광장이었기 때문이다. 러시아문학 수용사가 한국의 근현대사를 비추는 문화적 현상이자 그 자체로 20세기 한국의 사회문화사를 형성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서가 바로 여기에 존재한다.
성균관대학교 학술기획총서 ‘知의회랑’의 마흔다섯 번째 책이다.
출처:본문중에서
2. 저자
저자: 김진영
휘튼칼리지(Wheaton College, Mass.) 러시아어문학과를 졸업하고 예일대학교(Yale University) 슬라브어문학과에서 푸시킨 연구로 석ㆍ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1년부터 연세대학교 노어노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푸시킨: 러시아 낭만주의를 읽는 열 가지 방법』, 『시베리아의 향수: 근대 한국과 러시아문학, 1896~1946』, 번역서로 『예브게니 오네긴』, 『코레야 1903년 가을: 세로셰프스키의 대한제국 견문록』, 『땅 위의 돌들』(러시아 현대시 선집), Так мало времени для любви(정현종 러시아어 번역시 선집) 등이 있다. 『푸시킨』 단행본은 2016년 러시아아로 번역, 출간되었다(Пушкин: Десять очерков о русском романтизме, Ст. Петербург, Петрополис).
출처:본문중에서
3. 목차
서문: 교차로에서
일러두기
제1장 ‘붉은 산’과 ‘붉은 기’ 사이: 혁명기 시인 오장환과 예세닌
일제 강점기의 예세닌 번역: 독인ㆍ조벽암ㆍ우남
오장환의 『예세닌시집』: 혁명적 자아의 안전통행증
「나의 길」: 뒤로 하는 고향, 새로 맞는 고향
제2장 언어의 기념비: 해방기 조소친선의 서사와 수사
해방기의 조소친선: ‘조쏘문화협회’와 『조쏘문화』
‘영원한 악수’에서 ‘영원한 친선’으로: 조소친선 서사의 마스터 플롯
‘생명의 뿌리’: 재생과 회생의 엠블럼
제3장 스탈린의 ‘태양’ 아래: 김일성 형상의 원형을 찾아서
풍문ㆍ사실ㆍ전설: 김일성의 등장
태양의 수사학: 스탈린과 김일성
두 ‘태양’: N. 그리바초프의 「김일성장군」
제4장 문학사와 이념성: 한국적 맥락에서 읽는 러시아 문학사
영어권 러시아 문학사의 계보: 옥스퍼드 『러시아 문학사』가 나오기까지
새로 쓰는 러시아 문학사: 세계문학 시대의 일국 문학
한국의 러시아 문학사 기술: 이념과 문학사 문제
제5장 강철과 어머니와 고리키: 80년대 운동권의 러시아 문학정신
‘강철’의 시대: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
‘운동’의 역할 대본: 『어머니』
시대가 읽은 고리키 문학: 해방기와 민주화기
제6장 모스크바에는 아무도 없다: 1990년대와 러시아
페레스트로이카와 후일담 문학: 백무산ㆍ황지우ㆍ김정환ㆍ김영현
다시 쓰는 러시아 여행기: 서정주ㆍ송영
후일담 문학의 해체: 공지영의 「모스크바에는 아무도 없다」
‘벽’이 무너지다: 윤후명의 「여우사냥」
제7장 길 위의 민족: 고려인 디아스포라 문학
언어의 뿌리, 민족의 뿌리: 윤후명의 「하얀 배」
경계의 문학: 고려인 문학에 대한 문제의식
한국인ㆍ러시아인ㆍ세계인: 아나톨리 김의 세계관
제8장 왜 체호프인가: 《앵화원》에서 《벚꽃동산》까지
《앵화원》: ‘환멸기’의 러시아와 조선
체호프의 애수: 이태준이 읽은 체호프
왜 체호프인가: 현대의 체호프극
제9장 다시, 톨스토이냐 도스토옙스키냐: 베스트셀러와 스테디셀러
2017년의 반전: 도스토옙스키에서 톨스토이로
『안나 카레니나』: 새로운 번역의 가능성
도스토옙스키적 작가들: 황순원ㆍ이병주ㆍ김춘수
제10장 이념의 토포그라피: 광장과 밀실의 러시아ㆍ문학
광장과 밀실: 문학의 이분법, 읽기의 이분법
『화두』: 최인훈의 러시아 여행
마트료시카: 역사의 엠블럼
후기: 광장과 밀실은 하나다
주 / 참고문헌 / 찾아보기 / 수록 도판 크레디트
총서 ‘知의회랑’을 기획하며
총서 ‘知의회랑’ 총목록
출처:본문중에서
4. 책속으로
ㆍ가까운 과거를 말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문헌만 찾아보고 끝날 일이 아닌 것이, 아직도 그 시대를 살아 생생히 기억하는 사람이 있고, 80~90년대 세대는 바로 오늘의 주역이기도 하다. 그들에게 근과거는 여전히 진행 중인 현재로 여겨지며, 기억 또한 여전히 생성 중이다. 근대의 역동성이 일제 강점의 암흑 현실을 배경 삼았다면, 현대의 역동성에는 분단 현실이 버티고 있는데, 그 현실 여기저기에 이념의 지뢰가 깔렸다. 20세기 한국에 각인된 러시아와 러시아문학의 흔적을 ‘이념의 토포그라피(지형도)’라 명명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본문 7쪽, ‘서문: 교차로에서’ 중에서
ㆍ『러시아문학사 개설』에서 “편향적인 모더니즘적인 관점”, “맹목적인 학문적 사대주의”로 공격당한 국내 연구 경향은 다름 아닌 서구 망명 아카데미즘의 추종을 일컫는다. 사실 홍효민의 『로서아문학사』 이후 분단 초기의 한국은 러시아문학을 세계문학사의 한 귀퉁이에 전시했을 뿐, 그 위상에 걸맞은 자리를 배당하지 않았다. 분단 이전의 러시아문학 붐에 대치되는, 당연히 정치 상황에 따른 의도적 배제였다. 반공주의가 국가 이념일 수밖에 없었던 분단기 현실에서 러시아문학은 서구 망명 아카데미의 반소ㆍ반체제 입장을 기반으로 수용되었는데, 이는 해방기부터 분단 초기를 통틀어 소비에트 아카데미즘에 함몰되었던 북한과 대립의 짝을 이룬다.
-본문 172쪽, ‘제4장 문학사와 이념성’ 중에서
ㆍ그러므로 이렇게 말할 수 있을 듯하다. 80년대 이전 세대는 러시아혁명기의 서정적 낭만성에 경도되었고, 그 면에서 일제 강점기 지식인의 동반자적 혁명의식과 결을 함께 한 반면, 혁명의 전사였던 80년대 운동권은 실제 투쟁 교본으로서 소비에트문학에 몰두했다. 후자는 프로문학운동을 기점으로 혁명 투사가 되었던 일제 강점기의 급진 좌익 청년들과 닮은꼴이었다. 그들에게 문학은 상상력에 의한 감동보다 노동자 의식 각성과 민중운동 전략 같은 지극히 현실적인 효용성에 존재 의미가 있었다. 감동이 없었다는 것이 아니라, 감동의 성질과 의미가 달랐다는 말이다. 문학은 사회적 대의의 수단이었고, 그 맥락 안에서 『강철』과 『어머니』는 시대의 현상이 될 수 있었다.
-본문 201~202쪽, ‘제5장 강철과 어머니와 고리키’ 중에서
ㆍ러시아 ‘환멸기’의 두 얼굴이라 할 체호프와 고리키가 ‘환멸기’ 조선의 맥락에서 나란히 애독되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체호프 문학에 배어든 무기력한 지식인의 절망감과 고리키 문학에 담긴 민중적 연대의식이 조선 현실에 비추어 함께 읽고, 논하고, 연기됨으로써 식민지 시대 ‘엘리트 하층민’의 이중적 자의식은 자연스럽게 대리 분출될 수 있었다. -본문 350쪽, ‘제8장 왜 체호프인가’ 중에서
ㆍ개방을 계기로 앞 다퉈 러시아를 찾은 많은 한국인에게 그 여행은 ‘귀향’의 성격을 띠는 것이었다. 누군가에게는 동경의 이국이고, 어린 시절의 기억이고, 혹은 이념 신화의 현장이었을 장소를 다시 찾아 돌아가는 일종의 ‘감상 여행’이었던 셈이다. 특히 소련 체제를 본뜬 초기 북한 사회의 체험자에게 러시아는 대리 고향이나 마찬가지였으며, 따라서 그들의 러시아행은, 소설 속 문장 그대로, “정신의 추억으로 가득한 여행”일 수밖에 없었다.
-본문 476쪽, ‘제10장 이념의 토포그라피’ 중에서
ㆍ거의 모든 20세기의 소용돌이는 간접으로, 타자의 경험과 기록을 통해 겪다시피 했다. 생생한 사적 기억이 부재한 사람에게 타인과 집단의 기억이 밀려 들어와 아우성치며 서로 자리다툼하는 상황 역시 착란적이기는 마찬가지다. 이 책은 해방에서 개방에 이르는, 많은 부분 직접 겪지 못한 격변의 ‘사실들’ 가운데 맥락과 균형을 찾아가며 ‘스스로의 주인’이 되고자 한 내 나름의 방식이다.
-본문 497쪽, ‘후기: 광장과 밀실은 하나다’ 중에서
출처:본문중에서
5. 출판사서평
시인의 전향
1946년 이태준의 첫 소련 여행까지 다룬 전작이 끝난 시점에서 이 책은 시작한다. 이태준의 이념적ㆍ정서적 동반자들이 소련에 열광하던 해방 무렵이다.
그중 저자가 가장 먼저 소환한 이는 월북 시인 오장환. 도쿄에서 절망에 젖어 지내던 시절, 술에 취하면 자살로 생을 마감한 혁명 시인 세르게이 예세닌을 울며 애송했더라는 위인이다. 그러나 시인이 정작 예세닌을 번역한 것은 일제강점기의 그 시절을 훌쩍 넘겨 자신과 조국의 향방을 결단해야 했던 해방 공간의 혼돈 속에서였다. 저자는 바로 이 점을 염두에 두고서 “20세기 전반부에 나온 번역시 중 가장 뛰어난 업적”으로 손꼽히는 『예세닌시집』을 촘촘히 들여다본다. 그리고 해방이라는 역사적 상황과 정치적 이념, 시민으로서 시인의 임무에 대한 자각 속에서 그의 예세닌 독법에 지각 변동이 일어났음을 포착해낸다.
그가 번역한 예세닌은 예의 혁명의 기운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파멸한 비극적 서정 시인이 아니라, 과거를 뉘우치며 자신을 채찍질해 나아가던 ‘새로운 고향’의 시인이었다. 그러니까 번역을 통해 재구축한 예세닌의 초상은 곧 오장환 그 자신의 자화상이었다. 『예세닌시집』은 ‘어제’와 다른 ‘오늘’의 의미를 경계 짓는, 한 시인의 선언적 기록이자 전향의 증거물인 셈이다. 당대 지식인의 마음을 크게 뒤흔들었던 러시아문학의 영향을 상기시키는 한 장면이다.
조소친선의 그림자
이렇게 일제강점기 후반부터 해방기에 이르는 기간 동안 한국의 지식인 독자층을 지배한 것은 정치적 경향성이 농후한 혁명문학과 소비에트문학이었다. 남과 북의 전쟁은 실질적 발발 이전부터 이미 러시아문학의 수용을 통해 예행되었으며, 또한 한반도의 분단은 러시아문학 수용의 분단을 의미했다.
북한에선 소련파 숙청과 주체사상 확립 이후 소비에트문학의 영향력이 점차 약화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전체주의적 문화 기획의 틀은 건재했으며, 따라서 소련 문화를 이해하는 것은 북한 문화를 이해하는 직접적이고도 유용한 열쇠가 된다. 저자는 두 개의 장을 할애해 해방 직후 북한에서 전개된 ‘조소친선의 서사’와 스탈린에게 그랬듯 김일성에게서도 똑같이 반복된 ‘태양의 수사’을 분석하면서 한반도 북쪽에서 어른거렸던 소비에트의 그림자를 이해해본다.
요컨대 조선친선의 수사는 표면적으로는 평등 원칙에 입각한 국제주의 이념의 원리였지만, 실은 타자를 보다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전략의 수사였을 뿐이다. 소련이 구사한 ‘영향력의 기술’과 북조선이 확산시킨 ‘수사의 기술’을 통해 이념과 제도는 문화적으로 안착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북조선의 정치 담론에서 태양 수사의 원조는 스탈린이었으며, 김일성을 또 하나의 태양으로 호명하는 수사법은 당연히 조소친선 이념에 속한 자동 어법과도 같은 것이었다. 태양 수사의 계승은 전제 권력의 계승일 뿐이었다.
강철과 고리키와 어머니
반면 반공 이데올로기가 통치 원칙이던 남한에서는 혁명 러시아의 예술 문화가 금지되고 대신 반체제 망명 러시아문학이 러시아를 대표하는 문학으로 부상했다. 혁명과 공산주의의 폭력 속에 희생당한 러시아 지식인의 운명은 해방과 전쟁과 분단의 소용돌이에 휩쓸린 한국 지식인의 운명으로 겹쳐 읽혀지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분단 이후 1970년대까지 한반도에서 러시아문학은 체제라는 축에 얽힌 ‘한손잡이 문학’이 되어버리고 만다.
그런데 저자는 이 와중에 1980년대 운동권을 중심으로 한국(남한) 사회가 읽은 소비에트문학이 하나의 문화정치 현상을 만들어내고 있었음에 주목한다. 그것은 일제 강점기와 해방 정국에서 좌익 지식인들이 주도했던 소비에트문학 열풍의 리바이벌 현상이기도 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 문학의 전범으로 손꼽히는 막심 고리키의 『어머니』와 니콜라이 오스트롭스키의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는 각각 1985년과 1986년 청년 운동가들에 의해 번역 출간되면서 당대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고리키와 오스트롭스키 모두 시대가 읽은 문학이었다. 물론 1980년대와 일제 강점기의 독법 사이에는 유사성과 함께 차이점도 존재한다. 두 시대는 문학의 이념성을 앞세웠다는 면에서는 공통되지만, 현대가 읽은 고리키와 오스트롭스키는 한결 구체적인 목적성을 띠었다. 당대 문학은 지식인의 독점물이었던 일제 강점기와 달리 훨씬 광범위한 민중적 지지 속에서 집단 기획과 합의에 따라 수용된 것이었다. 요컨대 일제 강점기 『강철』과 『어머니』가 ‘밀실’의 문학이었다면, 1980년대 두 소설은 ‘광장’의 문학이었다.
과연 1980년대 중후반은 소련 문헌의 시대였다. 국내 번역문학 통계 자료에 따르면, 1945~1949년의 혼돈기에는 정치성 강한 소비에트문학이 집중적으로 번역 소개되었고, 문학 외에도 소비에트혁명 관련 보도들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니까 1980년대 중후반 역시 그 혼돈기에 견줄만한 일종의 ‘의사(疑似) 혁명’ 시대였다. 소비에트문학의 영향으로 노동자 문학과 운동권 문학이 발판을 마련했고, 급기야 1988년은 노동문학과 노동해방문학의 시기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르렀다. 전태일문학상이 제정되어 제1회 수상작이 나온 것은 이듬해인 1989년이다. 저자는 이 현상을 『강철』와 『어머니』를 전범으로 활용한 결과였다고 본다.
페레스트로이카와 후일담
소련 사회주의가 종말을 고한 시점에 한국 독자들이 사회주의 리얼리즘 서적에 몰입했다는 사실은 분명 역사적 아이러니라고 말할 수 있다. 때문에 페레스트로이카에 대한 한국 문학의 반응은 이중으로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소련의 실패는 국내 운동권 후일담 문학에 그늘을 드리우는 한편, 양국 간 문화개방의 결과로 소련과 고려인을 주제 삼은 새로운 문학을 탄생시켰다. 북한 문학과 고려인 디아스포라 문학에 대한 관심이 표출되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에 들어와서다.
저자는 대표적인 후일담 소설 몇 편과 문인들의 러시아 여행기를 되짚으면서 아득한 추억처럼 희미해진 페레스트로이카의 잔영을 재해독한다. 소련이 무너지자 좌표도 사라졌고, 이데올로기의 전령을 자처해온 문학은 이제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몰랐다. 후일담 문학과 여행 문학은 이 물음과 함께 출현한 시대적 징후였다. 자포자기적 패배주의, 혼돈의 자아 정체성, 새로운 목표 탐색이 혼재된 복잡한 심상의 서사가 펼쳐졌다. 그러나 단절의 시기, 혹은 어둠과 절망의 시기, 혹은 내면성의 시기로 지칭되는 1990년대 문학에서도 러시아와 소련의 자리는 의미심장했다. 소련의 붕괴가 가져다준 충격은 물론 컸지만, 페레스트로이카는 러시아와의 재회를 가능케 해주었으며, 새로운 생명력과 우정과 화합의 길을 열어주었다.
디아스포라 경계인의 문학
근현대 한국 문학사 기술에서 쉽게 해결되지 않는 두 과제가 있다. 분단 이후의 남북 문학을 어떻게 포괄할 것인가, 그리고 일제 강점기 이후 국외로 퍼져나간 디아스포라 한민족의 글쓰기 역사를 어떻게 분류하고 평가할 것인가의 문제다. 이러한 차원에서 저자는 한국문학과 러시아문학은 유사한 운명을 갖는다고 말한다. 러시아문학 역시 혁명 후 국외에서 전개된 망명문학과 소비에트 체제에서 비공식적 방법으로 출간되거나(타미즈다트(тамиздат), 사미즈다트(самиздат)) 아예 발표되지 못한 채 ‘지하’에(즉, 서랍 안이나 기억 속에) 묵혀두었던 언더그라운드 문학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가 숙제로 남아 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도형에 따라 무한 복제되던 일부 소비에트문학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도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과제다.
저자는 ‘길 위의 민족, 고려인 디아스포라 문학’이라는 장을 통해 드넓은 동토에 흩뿌려진 존재들의 역사를 재환기한다. 결론은 진정한 디아스포라 논의의 관심은 혈통상의 뿌리를 찾는다거나 민족과 민족 또는 영토와 영토 사이의 경계를 밝히는 문제에 있지 않는다는 것. 예컨대 대표적인 고려인 3세 작가 아나톨리 김은 21세기 디아스포라 이론이 깨우쳐 주장해온 ‘경계 허물기’의 과제를 일찍이 실존적으로 터득해 각 개인이 곧 인류 전체라는 우주적 원리로써 대답했다. 즉, 경계인의 문학은 민족 정체성 문제 너머 이미 보편적인 인간의 문제에 도달해 있다.
광장과 밀실 그리고 이념의 토포그라피
그리고 20세기 전반기 지나 후반기에도 여전히 한국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체호프와 톨스토이/도스토옙스키의 유명세에 대한 분석이 이어지고, 책은 자신의 명명을 스스로 설명하는 마지막 장에 이른다.
대략적으로 한국에서는 약 50년을 주기로 러시아를 향한 관심의 고조가 되풀이되었다고 저자는 판단한다. 개화, 해방, 민주화처럼 국가적 정체성이나 자의식의 큰 변화를 겪는 시점마다 러시아는 강력한 우방, 혹은 사회주의 유토피아의 전범, 혹은 사회주의 신념의 배반자인 동시에 반면교사로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때마다 동양(중국)에 반하는 서양으로 인식되거나, 제국주의(일본)에 반하는 반제국주의로 추종되거나, 반자본주의 운동에 역하는 자본주의 물결의 예증인 양 해석되면서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시각과 이데올로기에 상대주의적 관점을 제공해주었다. 이렇게 러시아를 향한 관심의 고조는 한국이 겪어온 정체성의 변신과 관련된 징후들이었다. 즉, 한국에서 러시아문학은 바로 그 변신의 징후를 뒷받침하고 반영하는 기록의 역할을 맡고 있었다. 최인훈 『광장』의 어법을 빌려, ‘밀실’의 텍스트 너머 ‘광장’의 텍스트로 기능해온 것이다.
따라서 해방 이후 반세기 한국 사회를 관통했던 러시아문학의 궤적을 되짚을 때, ‘광장과 밀실’의 이분법은 결코 생경한 구도가 아니다. 사회주의냐 민족주의냐, 소련이냐 미국이냐, 북조선이냐 남조선이냐로 갈려버린 분단 현실은 러시아문학 독법에 양분화를 가져왔고, 자연스럽게 개인의 내면에도 분단의 갈등을 불러왔다.
저자는 페레스트로이카와 소련 해체 이후 쓰인 최인훈의 『화두』를 바로 이 지점에다 소환한다. 그에 따르면 『화두』는 여러 겹 ‘길 떠남’의 이야기다. 회령 출신인 작가(최인훈)는 원산에서 소련 체제를 경험하고, 1950년에 월남했다. 북조선에서 학급 소년단원에게 추궁당한 자아비판회 사건과 「낙동강」 감상문을 써 학급 전체 앞에서 칭찬받은 사건은 광장과 밀실에 대한 작가 평생의 화두로 남아 있었고, 어언 세기말 소련이라는 장벽의 붕괴는 그 화두에 대한 깨달음의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그러니까 『화두』는 해방에서 개방으로 이어진 “기억의 밀림” 속에서 스스로 맥락을 찾아가는 대장정의 기록이었다. 저자는 작가의 이 화두가 분단 현실을 겪어온 한민족 전체의 화두에 해당하며, 따라서 이 소설은 집단 역사 서술을 대신한다고 평가한다.
저자는 진술을 이렇게 마친다. “최인훈은 『광장』이 ‘1945년에서 1950년까지 북한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쓸 수 있었던 소설’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화두』는 최인훈이 1950년 이후 남한에서 생활했기에 쓸 수 있었던 소설이다. 소련 붕괴와 개방이라는 역사적 전환을 목격했기에 비로소 쓸 수 있었던 소설이다. 분단 민족의 정체성과 기억과 이념의 뒤엉킴을 추적한 그 혼신의 궤적 위에서 러시아와 러시아문학의 자취는 한 번도 사라졌던 적이 없다.” 한국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러시아와 러시아문학의 존재감을 새삼 확인하는 대목이다.
출처: 「 광장의 문학 」 출판사 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24년 추천도서(24.3~ > 2024-12' 카테고리의 다른 글
12월의 추천도서 (4319) 당신이 모르는 진짜 농업 경제 이야기 (5) | 2024.12.29 |
---|---|
12월의 추천도서 (4318) 김택근의 묵언 (3) | 2024.12.28 |
12월의 추천도서 (4316) 여행하는 일본사 (3) | 2024.12.26 |
12월의 추천도서 (4315) 어두운 시대에도 도덕은 진보한다 (28) | 2024.12.25 |
12월의 추천도서 (4314) 유혹하는 글쓰기 (3) | 2024.12.24 |